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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헨리코 - 7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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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헨리코 2세(Henricus II)

 

성 헨리코 2세 by Hans Bar photo by Hans-Jurgen Guenther_in the Archbishops Office Freiburg in Breisgau

 

 

 

성 헨리코(헨리쿠스, Henricus)97356일 바이에른(Bayern) 또는 힐데스하임(Hildesheim)에서 바이에른의 공작 하인리히 2세와 부르고뉴(Burgogne)의 왕인 콘라트(Conrad)의 딸 기셀라(Gisela)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프라이징(Freising)의 아브라함 주교에게 교육을 받다가 힐데스하임의 주교좌성당 학교를 졸업하고 바이에른으로 가서 레겐스부르크(Regensburg)의 성 볼프강(Wolfgang, 1031) 주교의 제자가 되었다. 995년에 사망한 부친의 뒤를 이어 바이에른(Bayern)의 공작 하인리히 4세가 되었고, 998년에는 룩셈부르크(Luxembourg)의 여백작인 성녀 쿠네군다(Cunegundis, 33)와 결혼하였다. 결혼 첫날밤에 성녀 쿠네군다는 남편에게 정결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 위해 동정을 지키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남편인 성 헨리코 또한 평소 그러한 희망이 있었다며 일생 남매처럼 지내되 세상에는 알리지 말자며 동정서원을 발했다.

 

성 헨리코가 황제에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1002123일 오토 3세가 이탈리아의 비테르보(Viterbo)에서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세 명의 후보자가 독일의 왕권을 차지하고자 했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 그해 6월 독일 마인츠(Mainz)에서 소수의 귀족과 교회의 도움으로 왕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마인츠의 성 빌리지스(Willigis, 223) 대주교에게 도유를 받고 왕위에 올랐으나 실질적으로 최종 승인을 얻기까지는 1년이 더 걸렸다. 그 후 1014214일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투스 8(Benedictus VIII)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대관식을 올렸다. 그의 주요 관심사 중의 하나는 독일 성직계의 강화와 교회의 개혁과 쇄신이었다.

 

성 헨리코는 성녀 쿠네군다와의 혼인 중에 동정을 지켜 요셉의 결혼이라는 전설이 나올 만큼 경건한 신앙생활을 했다. 그의 스승은 성 볼프강이었고, 클뤼니(Cluny) 수도원의 기틀을 마련한 성 오딜로(Odilo, 11)와 복자 리카르두스(Richardus, 614)는 그의 절친한 친구였다. 그는 젊어서 사제직에 관심이 있었고, 결혼 후에도 수도자가 되려는 마음이 있었으나 자신의 직책상 뜻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그의 신심은 수도자에 못지않았다고 한다. 그는 1007년 밤베르크(Bamberg) 교구를 설정하고, 그곳을 교육과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그는 1024713일 괴팅겐(Gottingen) 근처의 그로나(Grona)에서 세상을 떠나 밤베르크의 성당 묘지에 안장되었다. 성 헨리코 2세는 1146년 교황 에우게니우스 3(Eugenius 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고, 중세 독일의 왕 중에서 가장 명예로운 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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