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홀만 헌트(William Holman Hunt)의 그리스도와 두 명의 마리아(Maria)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는 복음서에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루카 8,2)로 묘사되었는데, 이는 갈릴래아 호수 서쪽에 있는 어촌 마을인 막달라(Magdala) 출신의 마리아라는 뜻으로 지명을 이용해 이름을 수식한 것으로 보아 가까운 친척이 없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마리아 막달레나’라는 이름은 신약성경에서 모두 12번 나온다.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의 치유 은총으로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뒤에 비슷한 처지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자기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을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었다(루카 8,2-3). 그리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을 지켰고(마태 27,56; 마르 15,40; 요한 19,25), 저녁때가 되어 아리마태아 출신의 부유한 사람이자 의회 의원인 요셉(Josephus, 3월 17일)이 빌라도의 허락을 받고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 받아 바위를 깎아 만든 자기의 새 무덤에 모실 때도 그 맞은쪽에서 지켜보고 있었다(마태 27,61; 마르 15,47). 안식일 다음 날,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몇몇 여인과 함께 향료를 들고 무덤으로 달려갔다가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고 그리스도의 시신이 없음을 발견했으며(마태 28,1; 마르 16,1; 루카 24,1-3; 요한 20,1-2), 무덤 밖 동산에서 슬피 울고 있을 때 “여인아,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고 물으시고 “마리아야!” 하며 부르시는 부활하신 스승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사도들에게 전할 사명을 받고 제자들에게 가서 그 소식을 전하였다(요한 20,11-18).
복음서에서 언급되고 있는 다른 여러 마리아 중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분명하게 같은 인물로 제시된 이는 없다. 단지 서방 교회 전통에서는 오래전부터 예수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성녀 마르타(Martha, 7월 29일)와 성 라자루스(Lazarus, 7월 29일)의 동생인 베타니아(Betania)의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인물로 보아왔다. 오리게네스를 비롯한 초기 성서학자들은 이들을 서로 다른 사람이라고 보았지만,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591년의 강론에서 루카 복음 7장의 ‘죄 많은 여자’를 ‘창녀’로 잘못 해석하고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와 요한 복음 11장 2절의 ‘베타니아의 마리아’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같은 사람으로 간주하면서 이런 전통이 생겼다. 그 후 서방 교회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예수님을 만나 창녀 생활을 청산하고 회개한 인물로서 참회와 속죄의 이상적 모델로 여겨져 왔다. 실제로 많은 예술가가 그러한 모습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표현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과 전통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한 이미지를 왜곡하는 부정적 결과를 가져왔다. 가톨릭 교회는 1969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전례 개혁을 진행하면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창녀였다는 오해를 철회하고, 11세기 로마에서 시작해 다른 곳으로 확산하여 7월 22일에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 기념해 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위한 기념일은 유지하기로 했다. 그러면서 성경 안에서 드러나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분명한 모습, 즉 일곱 마귀에서 해방된 후 헌신적으로 예수님과 그 일행의 시중을 들었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는 마지막 순간에도 주님 곁을 지켰으며,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으로 가서 빈무덤을 발견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나 경배했고, 주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다른 사도들에게 알리라는 사명을 예수님께 직접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동방 교회 전승은 10세기부터 ‘향유를 들고 다니는(Mirofora)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를 기념하면서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와는 다른 사람으로 보아왔다. 그 전승에 따르면 주님 승천과 성령 강림 이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모 마리아와 사도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과 함께 에페수스(Ephesus)로 가서 선교하다가 선종한 후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 그런데 프랑스 교회의 전승은 이와는 다르다. 그에 따르면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녀 마르타와 성 라자루스와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배를 타고 이스라엘을 떠나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해 마르세유(Marseilles)에서 복음을 전하고 알프스 산의 한 동굴에서 30년 동안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유해 또한 엑상프로방스(Aix-en-Provence) 지역에 매장되어 있다고 믿고 있다. 프랑스 전승은 서방 교회의 오랜 전통대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같은 사람으로 보고 기념해 왔다. 옛 “로마 순교록” 역시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성녀 마르타에 대해 그녀의 동생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죽음에서 소생한 성 라자루스와 함께 설명하며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Tarascon) 지역에서 선종했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일부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과 29일의 관련 목록에서 프랑스 전승과 관련된 언급을 삭제하고,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뿐만 아니라 죽었다가 주님에 의해 소생한 성 라자루스와 주님의 말씀을 경청하던 성녀 마리아를 함께 기념하도록 함으로써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에서 벗어났다.
2016년 6월 3일 예수 성심 대축일에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예수님 부활의 첫 목격자인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의무 기념일을 축일로 승격하는 교령을 발표했다. 경신성사성 차관 아서 로시 대주교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단히 사랑했고, 아울러 그분에게 사랑받은 이 여성의 중요성이 자비의 희년에 새롭게 조명되길 바란다.”라며 “이 결정은 여성의 존엄성과 새로운 복음화, 그리고 하느님 자비의 위대함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라고 밝혔다. 그리고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는 “특히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에게 주님의 부활 소식을 알림으로써 그들이 용기를 내어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도록” 예수님께 받은 영예로운 사도 직무를 수행했기에 “새로운 복음화의 여정을 걷는 교회는 성녀의 이런 특별한 역할에 주목하고 전례를 통해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이런 취지에 따라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축일을 위해 마련된 새 감사송은 ‘사도들을 위한 사도’(Apostolorum Apostola)라는 제목을 부여받았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과 연구 결과를 통해 밝혀진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의 행적과 역할을 정리하여 작성되었다. “… 살아 계신 주님을 사랑하였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주님을 뵈었으며 무덤에 묻히신 주님을 찾던 마리아 막달레나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경배하였나이다. 주님께서는 동산에서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시어 사도들 앞에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시고 새로운 삶의 기쁜 소식을 세상 끝까지 전하게 하셨나이다. …” 감사송 본문은 특별히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가 주님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사실과 사도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증언하는 첫 번째 사람으로서 사도 직무의 영예를 주님에게 직접 받았음을 강조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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