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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레명 축일] 성 오딜로 -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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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 오딜로는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Auvergne)에서 귀족인 메르쾨르(Mercoeur) 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브리우드(Brioude)의 성 율리아노   신학교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후 991년경에 클뤼니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는 993년 제4대 수도원 원장인 성 마욜로(Majolus, 5월 11일)의 비서로 일하다가, 994년 5월 11일 제5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인자하고 자비로운 성품을 지닌 그는 동시에 뛰어난 조직력과 지도력과 통솔력을 발휘하여 클뤼니 공동체의 수를 크게 확장시키는 동시에 하나로 통합시켜 클뤼니 연합회를 체계적으로 정립시켰다.
1030-1031년에 성 오딜로는 자신의 수도원과 소속 모든 회원들이 함께 기념할 축일로 '모든 성인의 날'(11월 2일, 오늘날의 위령의 날)을 택하였다. 이 기념일은 후에 교회 전례력에 정식으로 수록되었다. 1041년에 성 오딜로는 수도원 내에서 수요일 밤부터 월요일 아침까지 일체의 싸움을 중지하도록 '신의 휴전'(Treuga Dei)을 확대시켜 적용하였다. 또 성당에 피신처를 구한 사람을 체포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만든 장본인이기도 하다. 언제나 가난한 이들을 돕는데 관심을 기울였던 그는, 1033년에 대기근이 일어나자 수도원 소유의 재물을 팔아 병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 주었다.
성 오딜로는 이러한 모든 일을 통하여 내외적으로 클뤼니 수도원의 기틀을 마련하는 일에 몰두하였다. 구체적으로 그는 새롭고 웅장한 수도원 건물들을 짓는 데 헌신하였으며, 클뤼니 수도회가 에스파냐로 진출하도록 하였다. 또 어려서부터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깊었던 그는 육화에 있어서 동정녀의 역할과 성모 마리아의 영원한 동정성이 지닌 특권을 역설하였다. 그는 1049년 1월 1일 수비니(Souvigny)의 수도원을 방문하였다가 사망하여 그곳에 안치되었다. 그는 1063년에 시성되었는데, 이렇듯 빠른 진행에는 성인의 전기를 저술한 성 베드로 다미아니(Petrus Damianus, 2월 21일)의 역할이 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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