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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기념일> 성 유스티노 순교자 기념일 -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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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굿뉴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 유스티노(Justinus, 또는 유스티누스)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의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에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던 중에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성 유스티노가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된 것은 130년경이다. 그는 이후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그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소에서 유대인 트리폰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가졌으며, 이것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 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Antonius Pius) 황제가 있는 로마(Roma)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유스티노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이다. 그는 크레센스라는 견유학파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하여 로마(Rome)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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