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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스테파노 -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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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성 스테파노의 순교 [Le Martyre de saint Etienne] - 디에고 폴로 2세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네이버 지식백과] 돌에 맞는 성 스테파노 [Lapidation de saint Etienne] - 안니발레 카라치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지엔씨미디어)

 

그리스어에 능숙한 유대인으로서 아마도 유대 나라 밖에서 태어난 듯하나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성 스테파노(Stephanus, 스테파누스)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 그리스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의 세속적인 요구에 부응하도록 사도들로부터 선발된 일곱 부제 중의 한 명이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안수를 받았고, 하느님의 은총과 성령의 힘을 가득히 받아 백성들 앞에서 놀라운 일과 큰 기적을 많이 행하였다. 또한 그는 키레네(Cyrene)와 알렉산드리아에서 온 유대인들로 구성된 일명 '자유인의 회당'에 속한 몇 사람들과 논쟁을 벌였는데, 그들이 성 스테파노를 감당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을 매수하여 그가 모세(Moyses)와 하느님을 모독했다는 소문을 퍼트렸다. 그는 체포되어 의회에서 자신을 변호하는 설교를 하자 의회 의원들은 성 스테파노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갈며 그를 죽이려 하였다. 그래서 그는 도시 외곽에서 돌을 맞고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사도 6-7장 참조). 사도행전 8장 2절에는 경건한 사람들이 성 스테파노를 장사지냈다고 언급되어 있으나, 그의 무덤이 어디인지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한편 415년 8월 3일 루키아누스(Lucianus) 신부가 예루살렘에서 15km 떨어진 카프르 가말라(Kafr Gamala)에서 성 스테파노의 유해를 발견하였는데, 이 유해는 에스파냐의 메노르카(Menorca), 아프리카의 히포(Hippo)와 예루살렘, 시온(Sion),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거쳐 로마(Roma) 등으로 나누어져 전해졌다고 한다. 그리고 각 도시에 보관된 유해 위에 성 스테파노 기념 성당이 건축되어 이 성당들에서 많은 기적이 이루어졌고, 이로 인해 성 스테파노의 유해 공경은 세계 각 곳으로 퍼져 나갔다. 서방 교회에서는 9세기경부터 1955년 공식 전례에서 제외될 때까지 성 스테파노의 유해가 발견된 8월 3일을 '성 스테파노의 유해 발견 축일'로 기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리스도교 부제로서 최초로 순교한 1세기의 성인. 생몰연대 미상. 라틴어로 스테파누스(Stephanus), 프랑스어로 에티엔(Etienne). 사도들의 전도활동의 부제로 선출되고, 유대사회의 빈자를 도왔다. 그러나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돌에 맞아죽는 형을 받고 순교 하였는데 그 집행에 입회한 것이 사울(후의 바오로)이다. 약 400년 후에 유골이라고 생각된 것의 일부가 발견되어 라우렌시오의 무덤 속에 안치했는데, 그때 라우렌시오의 유골이 옆으로 비켜 모여서 장소를 내주었다고 한다. 이탈리아, 프랑스에서 널리 숭배되고, 이 성인에 바쳐진 교회는 부르주의 대성당 등 수없이 많다. 미술에는 돌에 맞아죽은 순교 장면이 가장 많이 표현되었으며 종려, 성경에 더해서 지물은 순교구의 돌(피가 묻어 있는 것도 있다)로, 책위, 머리위 등에 있는 경우가 많다.

[네이버 지식백과] 스테파노 [Stephanos] (종교학대사전, 1998. 8. 20., 한국사전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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