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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 1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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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지식백과] 성 세바스티아노의 순교 [Le martyre de saint Sébastien] - 안톤 반 다이크 (프랑스국립박물관연합(RMN))

 

출처 : 가톨릭 굿뉴스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인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누스)283년경에 로마에서 군인이 되었고, 성 마르첼리아노(Marcellianus, 618)와 성 마르코(Marcus, 618)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던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성 니코스트라토(Nicostratus, 77)가 있었고,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5)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성 클라우디오(Claudius, 77),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오(Tiburtius) 등이 있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노가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카스툴로(Castulus, 326)의 미망인인 성녀 이레네(Irene)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노는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에 던져 버렸다. 그의 죽음과 용기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노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서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지하묘지에 묻혔다. 그는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염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로마인들이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노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1575년에 밀라노(Milano), 1599년에는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노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성 세바스티아노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세바스티아노 또는 세바스티아누스(이탈리아어: San Sebastiano, ? - 287120)는 초기 그리스도교의 순교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3세기 로마 황제의 친위대원이었으나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죄목으로 파직되어 순교하였다.

그리스도교의 성인. 축일은 120일이다. 그의 이름은 그리스어로 존경스러운이란 뜻을 갖고 있다. 7-8세기에는 십자가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있거나 면류관을 쓴 젊은이로 그려졌으나, 중세에는 활과 화살을 가진 기사로 그려졌다.

그러나 르네상스 이후에는 원기둥에 밧줄로 묶인 채 화살을 맞은 젊은이의 모습을 선호하게 되었다. 대중적인 전설에서 그의 상처는 예수의 성흔에 비유되었다. 그러한 이유로 그의 몸을 꿰뚫은 화살은 총 5개로 그려진다. 운동선수와 사수·교통순경·태피스트리 제작자·전염병 희생자의 수호성인이다.

세바스티아노는 갈리아 출신의 로마 제국 군인으로 나르본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밀라노에서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의 군인이 되었다.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그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감옥에 갇힌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도왔다. 그러나 그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황제는 그에게 사형을 명했다. 세바스티아노는 기둥에 묶여 화살을 맞고 죽도록 버려졌다. 그러나 이레네라는 미망인이 그를 발견하여 치료해주었다.

세바스티아노는 다시 한 번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앞에 서서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황제를 호되게 꾸짖었다. 황제는 그를 붙잡아 몽둥이로 쳐서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으며 그의 시신은 로마의 하수구에 던져졌다.

한 그리스도인 여인의 꿈에 세바스티아노가 나타나 자신의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었으며 여인은 세바스티아노의 시신을 찾아 매장했다.

출처 : 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B%B0%94%EC%8A%A4%ED%8B%B0%EC%95%84%EB%88%84%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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