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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녀 안젤라 메리치 동정 - 1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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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시아의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브레시아의 성녀 안젤라 메리치(Angela Merici)

 

성녀 안젤라 메리치는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Garda) 호수 남쪽 데센자노(Desenzano)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다. 어려서부터 성인전을 즐겨 읽었고, 성인들의 금욕 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쌍둥이같이 자라던 15세의 언니와 브레시아 시민이라는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였던 아버지 조반니(Giovanni Merici)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휴양지로 유명한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그 후 성녀 안젤라는 작은 형제회 재속회(3회)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부모처럼 돌보아주던 외삼촌의 사망 후 고향 데센자노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이웃에게 봉사하며 살았는데, 특히 주위의 가난한 아이들을 모아 기도와 신앙생활을 지도하였다. 1516년 안젤라는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브레시아의 귀족 파텐골라(Patengola) 가족을 위로하러 브레시아에 갔다가 그들의 청으로 그곳에 머물게 되었다. 이곳에서 성녀 안젤라는 죄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속죄와 금욕생활을 하는 한편 고향에서와 같이 청소년들에게 종교 교육을 실시하였다.

1524년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고, 다음 해 로마를 순례한 뒤 그녀는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에게 동정녀들의 모임을 시작하고자 하는 뜻이 있음을 밝히고 허가를 받아 브레시아로 돌아왔다. 카알 5세와 프랑스와의 전쟁으로 1528년 브레시아가 점령당하자 크레모나(Cremona)로 피난을 간 그녀는 그곳에서 심한 병을 앓다가 다시 건강을 회복하였다. 1530년 전쟁이 끝나 브레시아로 돌아온 성녀 안젤라는 뜻을 같이 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이듬해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다. 그리고 1535년 11월 25일 28명의 동정녀들은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성녀 안젤라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 정결, 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설립되었고, 1537년 성녀 안젤라가 초대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들은 특히 소녀들의 교육에 투신하고자 하였다. 가톨릭 여성 교육을 표방한 수녀회는 우르술라회가 첫 번째이다. 초기에 그들은 가족을 떠나지 않고 자신들의 삶의 자리에서 수도복이 아닌 단순한 복장으로 환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직접 방문하여 그들에게 봉사하였다. 성녀 안젤라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고, 1768년 교황 클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굿뉴스

 

 

축일은 127일이다. 메리치는 1474(혹은 1470) 321일 이탈리아의 데센자노에서 태어나 경건한 신앙인으로 교육받았으며, 성인들의 금욕생활에 감명을 받아 금욕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13세 때 첫 영성체를 한 후 평생 동안 동정(童貞)을 지킬 것을 결심하였는데, 다정하였던 15세의 언니와 귀족 작위와 넓은 땅을 가진 영주(領主)였던 아버지와 어머니를 연달아 여의고, 외삼촌의 보살핌을 받으며 5년간 살로(Salo)에서 살게 되었다. 당시 이 도시는 유명한 휴양지였는데, 비도덕적이고 향락적인 모습은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 그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곤 하던 메리치는, 그 후 프란치스코 재속회(3)에 입회하여 기도와 가난, 극기의 생활을 철저히 실천하며 자신을 이웃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1497~1498년경 그녀는 후에 브루다초의 계시(Vision di Brudazzo)라고 불리는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다. 브루다초의 들판에서 기도하고 있던 메리치에게 아름다운 옷을 입고 머리를 장식한 동정녀들이 나타나 그들 중 죽은 언니 같은 한 처녀가 브레시아(Brescia)에 선택받은 동정녀들의 모임을 만들라는 하느님의 뜻을 전한 후, 천사들의 옹위를 받으며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이 계시는 그녀의 기억 속에 각인되었지만 마음에만 간직한 채 인상적인 삶을 계속하였다.

152450세가 된 메리치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로 순례길에 올랐으나 그곳에 도착하기 전 크레타(Kreta) 항구에서 갑자기 눈이 멀게 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성지를 전부 순례하며 어디서나 열렬하게 기도하였는데, 순례에서 돌아오는 도중 칸디아(Candia)의 십자가상(十字架像) 앞에서 다시 눈을 뜨게 되는 치유의 기적을 체험하고서 더욱 하느님의 이끄심에 의지하게 되었다.

1529년에는 자신을 평화의 제물로 바치기 위해 성모의 성지인 바랄로 산(:Monte Varallo)으로 순례를 하였다. 1531년에 뜻을 같이하는 12명의 동정녀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으며, 1532년 바랄로 산으로 성지 순례를 가 보리수나무 십자가 아래에서 자신들을 봉헌함으로써 겸손한 이들(dimesse)’로 불려지는 단체를 창설하였다.

28명의 동정녀들은 15351125일 브레시아의 성 아프라(St. Afra) 성당에서 영성체를 하고 메리치가 만든 규칙에 따라 청빈·정결·순명을 지키는 회원이 될 것을 서명함으로써 '우르술라회'가 공식적으로 창설되었다.

메리치는 1540년 1월 27일 사망하여 성 아프라 성당에 묻혔으며, 1768년 교황 글레멘스 8세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에 의해 시성되었으며,'우르술라회의 창립자'라는 칭호가 부여되었다. 1962년에는 그녀의 고향인 데센자노의 수호성녀가 되었고, 그녀가 세례받은 성당은 <성녀 안젤라 성당>으로 불려지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안젤라 메리치 [Merici Angela]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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