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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부산 여행] 영도대교 - 우리나라 유일의 도개교(도개행사 오후 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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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tour.yeongdo.go.kr/program/tour/tourinfo/outTourInfo.asp?idx=2

기본정보

1934.11.23 개통된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의 연육교로서 길이가 214.63m로 내륙쪽의 31.30m를 도개교로 하였으며 당시 총 공사비가 360만원이었다 한다.

개통식 이후 뭍쪽 다리의 일부인 도개부가 하루 7차례씩 들어올려졌으며 이 웅장한 모습을 보기 위해 모여드는 인파들로 인하여 영도대교는 부산제일의 명물 관광거리로 변하게 되었다.

6.25 동란 당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되었던 시절에는 전국에서 모여든 피난민들의 애절한 사연이 얽히는 무대가 되었고, 이때 영도출신 가수 현인선생의 굳세어라 금순아라는 대중가요가 부산시민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영도의 인구증가 및 교통난 등으로 인하여 1966.9.1 도개식 영도대교는 그 들림기능을 멈추게 되었으나, 2013.11.27 기존 4차선을 6차선으로 복원·개통하여 부산의 명소로 옛 명성을 다시 찾고있다.

영도대교 부근에는 당시 부산 제일의 명물이었던 도개식 영도대교의 역사적 사실을 전하기 위한 도개식 영도대교 기념비6.25 당시 피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었던 대중가요굳세어라 금순아의 시대적 배경을 담아 건립된현인노래비등이 있어 지나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련한 향수를 느끼게 한다.

 

이용시간

14:00 ~ 14:15 (매일)

 

찾아가는 길

버스 : 6, 7, 8, 9, 9-1, 11, 30, 70, 71, 82, 85, 88, 113, 135, 186, 508

도시철도 : 1호선 남포역 6번 출구

 

지하철 1호선 남포역 6번 출구로 나가는 길 

영도대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벽에 주~~~~~아~~~~ㄱ

 

영도대교의 탄생

천혜의 자연조건을 가지고 부산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영도, 그 영도와 부산을 긴밀하게 이어주는 엳도대교는 우리나라 최초의 연륙교이자 유일한 도개식 교량이었다. 일제시대때 일본인들은 영도에 조선소를 지어 대륙 침략의 교두보로 삼으려 했다. 그런 사유로 1931년 영도대교 건설계획이 세워졌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해운업자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나섰다. 부산항을 드나들던 1000톤 급 이상 선박은 돛이 다리에 걸리기 때문에 우회해야만 했던 것. 태종대를 돌아 부산항으로 오자면 1시가니 더 소요되고 그만큼 비용도 커졌다. 고심끝에 내륙쪽 31m 30cm를 들어올릴 수 있게 설계, 큰 배들의 운항이 가능하도록 시공했다. 3년간의 대공사. 용미산(옛 부산시청 자리)을 깎아 매립했다. 공사에 동원된 인부는 한국인과 중국인. 작업도중 바다에 떨어져 숨지는 등 희생이 잇따랐다. 산을 깎다가 산사태가 나 많은 노무자들이 비명에 가기도 했다. 그래서 다리공사 내내 밤이면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이 있었다고도 한다. 1934년 11월 다리가 완성되었다. 당시 부산 인구는 20만명이었는데 6만여명이 몰려와 개통식을 구경했다. 다음해 2월에는 전차가 개통돼 교량 위로 다녔다.

 

한국전쟁과 영도대교

영도대교는 6.25 한국전쟁 당시에는 애환의 장소이기도 했다. 부산으로 내려오던 피란민들은 만약 헤어지게 되면 영도대교에서 만나자고 약속해 실제로 이산가족을 면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다리에서 떨어져 고단한 삶의 끈을 놓아버리기도 했다. 이후 생활고까지 겹치자 투신자살자는 더욱 늘어갔다.

가수 현인이 부른 '굳세어라. 금순아'는 바로 이 무렵의 영도대교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노래가 한창 유행일 때 다리 이쪽 저쪽에는 [잠깐만!]이라는 팻말이 나붙었다. 자살 방지용이었다. 하지만 큰 효과가 없자 부산시경에서는 경찰관을 배치하기도 했다.

영도대교의 재탄생

영도대교는 완공 이후 영도와 육지를 잇는 유일한 교량으로 육상 교통의 중추적 기능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도개될 때마다 영도-내육간 교통정체의 큰 요인으로 지목된데다 당시 20여만명의 영도 인구에 공급할 상수도관을 다리에 부설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 그런 사유로 1966년 9월 1닐 도개를 멈추게 되고, 급기야 다리의 노후화와 관리비용의 부담으로 인해 철거냐 보존이냐의 양 갈래에 놓이게 된다. 하지만 2006년 11월 25일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 56호로 지정되면서 영도대교는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할 발판을 마련했다.

  

영도대교 전, 후 영도의 변화

주거지 확대 4524가구(1932년 영도대교 개통 전),  57451가구(2013년 10월 기준) 

인구확대 20,284명(1932년 영도대교 개통 전),  136,554명(2013년 10월 기준)

 

1934년 영도대교와 2013년 영도대교의 차이 

다리너비 18.3m(4차로), 25.3m(6차로)

도개시스템 50hp(유압식 전동기 2대),  215hp(유압식 전동기 2대)

도개각도 80도, 75도

통과선박 1,000t, 통과불가

도개속도 90초(고속)/240초(저속), 120초

공사비  360만원(2010년 환산), 1,000억원

도개횟수 7회(오전3회, 오후4회), 1회(매일 오후 2시)

  

 

 

지하철 역을 나와 영도대교로 향한다.

    

아직 2시가 안되어서 차들은 통행 중이다.

   

영도대교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56호 

연혁

1932년 4월 20일 기공

 

 

 

유라리광장

유라시아(유럽과 아시아) 대륙의 국도 7호선의 시점과 종점인 이곳을 유럽의 유와 아시아의 라(아) 그리고 사람, 마을, 모여 즐겨노는 소리를 뜻하는 리(이)의 조합으로 유럽과 아시아인이 함께 어울려 찾고 즐기는 장소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5년 11월 21일 부산광역시 중구청장

  

 

 

 

 

 

 

 

 

 

 

다리가 들어 올려지고 있다.  

 

 

들어 올려진 다리로 배가 지나가면 좋겠는데 아쉽게도....

    

다른 곳으로 지나간다.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있어서 도로 한복판에서 들어올려진 다리를 한 컷 찍는다.

    

갈매기가 도로 위를 날아다닌다.ㅋㅋㅋ

  

   

 

 

 

부산대교가 보인다.

    

다리가 내려가고 주위를 둘러본다.

진작에 알았더라면 아내를 모델로 뒤로는 들어올려진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을텐데.

    

상가건물들의 간판이 비슷비슷하다. 

   

 

 

수협은 이곳 자갈치에 없어서는 안될 곳 중 하나이다.

   

 

조위관측서 부산 1955.02

이 관측소는 바닷물의 높이, 수온, 염분, 바람, 기압, 기온 등을 자동으로 측정하는 해상관측시설입니다. 실시간으로 수집된 자료는 국립 해양  조사원 홈페이지(http://www.khoa.go.kr)에서 볼 수 있으며, 조석(물때) 예보, 해수면 상승감시, 항해안전, 해양공사, 해양레저 활동에 활용됩니다.

이 시설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중요시설이므로 관계자외 출입을 금하고 있으며, 시설물이나 장비를 훼손하면 처벌을 받습니다.

 

2016.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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