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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레명 축일] 성 그레고리오 7세 교황 - 5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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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굿뉴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소바나(Sovana)에서 가난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그레고리오(Gregorius)는 힐데브란트(Hildebrand)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어린 시절 로마(Roma)로 가서 삼촌이 아빠스로 있던 아벤티노(Aventino)의 성 마리아 수도원에서 성장하였다. 그는 라테라노(Laterano) 학교에서 지오반니 그라시아노의 문하생으로 공부하였는데, 그의 스승이 후일 그레고리오 6세 교황(1045-1046년 재임)이 되었을 때 교황 비서로 임명되었다.
그 후 1047년에 그레고리오 6세 교황이 선종하자 그는 성 오딜로(Odilo, 1월 1일)가 지도하던 클뤼니(Cluny) 수도원에 머물렀다는 말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1049년 툴(Toul)의 주교인 브루노(Bruno)가 성 레오 9세(Leo IX, 4월 19일) 교황으로 등극하자 그는 교황의 불림을 받고 로마로 가서 차부제품을 받고 교회의 재정과 성 바오로 수도원의 원장으로서 수도회 개혁을 담당하게 되었다. 1054년에 그는 상스(Sens) 교회회의를 주재하여 베렌가리우스(Berengarius)를 단죄하였고, 니콜라오 2세(Nicolaus II) 교황 때에는 교황 칙서 발간 책임자로 일하였다.
그는 1073년 4월 21일 알렉산데르 2세(Alexander II) 교황이 선종하자 대중의 환호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직매매의 죄를 들어서 밀라노(Milano)의 대주교를 면직하면서부터 교회 규율을 바로잡고 개혁을 추진했으며, 1075년 이전 해에 열린 로마 교회회의의 교령을 재확인하는 동시에 평신도의 성직 임명을 금지하는 교령을 반포하였다. 그의 재임 기간 중에 복잡한 사건들도 많았으나 교회가 크게 부흥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는 개혁 운동을 통해 교회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교황권을 크게 확립한 교황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동방 교회와 로마 교회 간의 일치에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황제와의 대립으로 이탈리아 남부 살레르노(Salerno)까지 피신했던 성 그레고리오 7세는 그곳에서 선종하였다. 그는 1584년 교황 그레고리오 8세에 의해 시복되었고, 1606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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