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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놀라의 성 바울리노 주교 - 6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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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가톨릭 굿뉴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 메로피우스 폰티우스 바울리노(Meropius Pontius Paulinus, 또는 바울리누스)는 로마(Roma)의 부유한 원로원 가문 출신으로 프랑스 보르도(Bordeaux)에서 태어났다. 그는 보르도의 학교에서 그리스-라틴 문화를 접하였고, 시와 수사학은 로마 황제 그라티아누스의 스승이었던 데치무스 막누스 아우소니우스(Decimus Magnus Ausonius)로부터 배웠다. 그의 부친은 갈리아(Gallia) 지방의 총독이었다. 그는 성공적인 법률가로 성장하여 여러 관직을 맡았고 골, 이탈리아 그리고 스페인 등지를 여행하였으며, 스페인 여자인 테라시아(Therasia)와 결혼하였다.
그러나 그는 보르도의 주교 델피누스를 만난 후 영세를 받았는데, 이때부터 공직에서 물러나 아키텐(Aquitaine)으로 은거하였다. 390년 그는 스페인에 있는 아내의 영지로 이사했는데, 그 당시에 외아들이 죽음으로써 막대한 재산을 교회에 희사하고 자신은 아주 엄격한 삶을 시작하였다. 393년경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주교가 그를 사제로 서품하자 바울리노 신부는 나폴리(Napoli) 근교인 놀라의 성 펠릭스 무덤 가까운 곳으로 이사하였다. 이때 친척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거의 전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하여 사용하였다.
그는 자선가로 유명하였을 뿐만 아니라 폰디에는 성당을, 놀라에는 수로(水路)를 그리고 수도원 같은 분위기였던 자신의 집에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도록 배려하였다. 또한 그는 폭넓은 교우관계를 유지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성 아우구스티노(Augustinus), 성 예로니모(Hieronymus), 암브로시오(Ambrosius),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노(Martinus) 등 수없는 명사들이 있었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51편의 편지, 32편의 시 등이 있다. 그는 프루덴티우스(Prudentius)에 버금가는 대시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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