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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대축일> 성 요한 세례자(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 - 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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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세례> 1304-1306년,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
프레스코화,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 이탈리아

 

성화 해설
무려 백여 년 전 르네상스를 예견한 대가, 지오토 특유의 코발트빛 푸른 배경이 펼쳐지고, 상단에는 빛으로부터 등장한 하느님이 한 손에는 성경을, 다른 손으로는 그의 아들 예수에게 축복을 내리는 모습이 친근하다. 이탈리아 파도바의 부유한 상인 스크로베니의 의뢰를 받아 그린 이 프레스코화의 중앙에는 에메랄드빛의 요르단 강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예수가 있는데 그의 순백의 상체는 성스러움과 죄 없는 순결을 증명하듯 눈부시다. 겸허한 자세로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예수 옆에는 낙타털 옷에 분홍 망토를 두른 세례자 요한이 팔을 길게 뻗어 물로 세례를 주고 그 뒤로는 이 광경을 바라보는 베드로와 요한이 있고, 반대편의 천사들은 예수가 다시 입을 망토를 들고 기다리고 있다.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생기 넘치면서도 고상한 성스러움이 돋보이는 걸작이다(박혜원 소피아).

출처: 가톨릭 굿뉴스

 

 

 

세례자 요한(洗禮者 - , 히브리어: יוחנן המטביל, 그리스어: Ιωάννης ο Βαπτιστής, 영어: John the Baptist, 프랑스어: Jean-Baptiste, 독일어: Johannes der Täufer, 이탈리아어: San Giovanni Battista)은 기원전 1세기 말에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묘사하는 설교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세례자이자 예수가 세상에 올 것을 예고한 예언자이다. 신약성서의 복음서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역사서 유대 고대사는 요한에 대해 비중있게 언급하고 있다. 특히 복음서는 예수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은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리스도교에서 동명이인인 사도 요한과 구분하고 있으며, 성 세례자 요한 축일은 624일이다.

 

복음서는 대개 세례자 요한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다. 오늘날 신약성서학자들이 가장 일찍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는 마르코 복음서(1,1-8)는 요한의 전도 활동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으며, 마르코의 기록은 마태오 복음서(3,1-20)와 루카 복음서(3,1-11)와 비교해 볼 때, 작고 큰 예수 전승들을 빼고 나면 거의 비슷하게 쓰여져 있다. 반면에 요한 복음서(1, 19-28)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나서서 자신의 활동사항을 보고하는 투로 짧게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요한의 탄생과 가족 사항은 오로지 루카 복음서(1, 5-25)에 의해서 전해지고 있다. 루카에 따르면 요한은 유대의 사제직에 있던 즈카르야(고대 그리스어: 자카리아스)와 아론의 피를 받은 어머니 엘리사벳의 아들이라고 한다. 성서에 따르면 요한이 태어나게 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늙도록 아내로부터 아이를 얻지 못하고 살던 제사장 즈가리야에게 어느 날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곧 엘리사벳이 남자아이를 잉태하게 될 것이며 아이가 태어나면 이름을 요한이라 지어 부르라고 지시하였다고 한다. 이에 덧붙여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도하는 일을 맞게 되리라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나이가 지긋한 관계로 천사가 전한 탄생소식을 믿지 못하여 상당히 몇 개월 동안 말을 하지 못하였다. 루카 복음사가는 세례자 요한의 탄생 이야기에 뒤이어서 예수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적는 편집구조로 요한과 예수가 하느님의 계시에 의해 태어났으며, 두 사람의 운명이 서로 얽혀진 것을 미리 암시하고 있다.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빨리 태어났으며 태어난 후의 그의 성장 과정은 그가 광야에서 세례를 베풀며 설교하기 시작할 때까지 알려져 있지 않다.

 

신약성경의 4대 복음서(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 복음) 속에서 보면 그는 젊은 시절엔 광야에 지내면서 메뚜기와 석청(야생꿀)을 먹으며 자신의 선조들의 삶인 유목민처럼 지냈고 그가 입던 옷은 낙타의 가죽으로 만들었고 허리띠 역시 가죽 끈을 이용했다고 한다 . 세례자 요한은 30세가 되던 해부터 갈릴래아의 요르단 강가에서 지내며 강에 오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설법하며 살았는데 특이하게도 같은 유대계인 바리사이파와 사두가이파들에게는 셰례를 베풀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세례자 요한은 우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는 예수를 알아보고 자신이 오히려 예수에게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예수의 결심이 확고하여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하며 이후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는 성령의 불로 세례를 베풀리라 하는 말과 동시에 예수와의 만남과 세례 이후로 그는 전 지역을 순례하며 설교를 했다고 한다.

 

마르코 복음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헤로데 왕실의 도덕적인 부패를 비판했다가 살로메의 어머니의 농간으로 처형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세례자 요한이 죽은 진짜 이유는 민중들에게 존경받는 세례자 요한의 엄청난 인기가 반란으로 이어질 것을 두려워하여 숙청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사망한 연도는 성경 속에서 보면 예수가 활동을 시작하던 시기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한 사망년도는 아직 잘 모른다.

 

복음서에서 세례자 요한을 예수가 세상에 올 것을 소개하기 위해 보냄 받은 예언자로 묘사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예수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 3주일에 마르코 복음서에 기록된 세례자 요한의 설교를 읽는다. 그의 설교는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1. 예수는 약속된 메시아이며, 그의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속죄양이다.(요한 1,29)

2. 메시아는 이제 곧 준엄한 심판을 인류에게 베풀 것이다.(루카 3,9)

 

세례자 요한은 속죄양으로서의 메시아사상은 그 당시 이스라엘 민중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 면에서 요한의 증거는 그리스도교 신앙이 정립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요한은 또한 메시아가 옴으로써 곧 마지막 날의 심판이 온다고 처음에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일반 민중의 기대와 다르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예수는 조금 보정을 해 주어야 했다(마태오 11). 예수는 세례자 요한이 전한 위의 두 가지 메시아사상은 시간차가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하였다. 그래서 초림에는 속죄양의 겸손한 모습으로 오고 두 번째 올 때는 심판주의 모습으로 온다는 것이었다.

 

또 신약성경에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이 사람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오 11,11)라는 구절이 나오듯, 그는 구약 최후의 예언자이자 신약 최초의 예언자인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그리스도에게 세례를 준 사람으로 유명한데, 이는 마태오 복음서의 기록에 따른 것이다. 마태오는 다른 복음서들과는 달리, 예수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보도를 하면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에게 세례를 준 것은 예수가 하느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스스로 원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에서는 세례자 요한이 심판자로서의 그리스도로 상상한 예수에 대해 회의를 가졌고, 예수는 자신이 사회적 소외자들을 해방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임을 선언함으로써 요한의 생각을 교정하였다고 보도한다.

출처 : 위키백과(https://ko.wikipedia.org/wiki/%EC%84%B8%EB%A1%80%EC%9E%90_%EC%9A%94%ED%95%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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