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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 -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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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타라의 성 베드로_by Luis Tristan_in the Museo del Prado_Madrid.jpg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에스파냐 중서부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의 알칸타라 지방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가라비토(Petrus Garavito)는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16세 때에 만하레테스(Manxarretes)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엄격한 보속 생활을 실시하던 중에 바다호스(Badajoz)로 파견되었고, 152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에서 설교하면서, 로브레딜로(Robredillo), 플라센시아(Plasencia), 라파(Lapa) 그리고 에스트레마두라 수도원의 원장으로 봉사하였으며, 라파 수도원을 봉쇄수도원으로 요청하여 허가를 받기도 하였다. 또 한때 그는 궁중의 전속사제로 일하다가 1538년에는 관구장이 되었다. 그는 다소 엄격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관구 총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자 관구장직을 사임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리스본(Lisbon) 교외 아라비다(Arabida) 산에서 성 마리아의 마르티누스 수도원의 형제들과 함께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수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따르려고 하였다. 관구 내에서 자신의 규칙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코리아(Coria) 교구의 주교로부터 승인을 얻은 후 새 수도원을 세울 허가를 교황 율리우스 3세(Julius III)로부터 받았다. 이것이 바로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의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수도원들도 그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1561년에는 성 요셉 관구가 설립되었는데,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관할 아래 두게 되었다.
1560년 그는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서 그의 고해신부 겸 상담자가 되었으며, 카르멜 개혁운동을 격려하였다. 그는 “기도와 묵상론”을 썼는데, 이것이 후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562년 에스트레마두라에서 사망하였고, 1622년 4월 18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된 후 1669년 4월 28일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1862년부터 브라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위대한 신비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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