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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가시미로 - 3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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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의 성 가시미로(Casimirus)

출처 : 가톨릭 굿뉴스

 

폴란드의 국왕 가시미로 4세와 독일의 황제 알베르트 2세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13명의 자녀 가운데 3번째인 성 가시미로(Casimirus)는 크라쿠프(Krakow)의 궁성에서 태어나 요한 들루고즈(Joannes Dlugosz) 신부로부터 교육을 받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성스럽고 엄격한 생활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생활을 원하였다. 그는 정당하지 못하다는 어떤 확신에 따라 그의 부친과 헝가리 귀족들이 요구하는 헝가리의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의 축출 공작에 군대를 인솔하는 직책을 거부하였다. 그는 이 결심을 조금도 바꾸지 않았다. 또한 그는 부친이 자신을 결혼시키려는 노력을 일축하고 학문과 기도 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는 그의 부친이 폴란드를 떠났던 1479-1483년까지 부왕 노릇을 하였으며, 리투아니아(Lithuania)를 방문하는 길에 그로드노(Grodno) 궁성에서 운명하였다.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의 주교좌 성당에 있는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1522년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폴란드의 가톨릭 성인. 폴란드 왕 카시미로 4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가난한 자의 옹호자라고 불렸을 정도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폈다. 생존시부터 많은 존경을 받았지만, 사후에는 한층 더 공경을 받았고, 많은 기적도 일어났다.

축일은 34일이다. 폴란드 왕 가시미로 4세와 오스트리아의 공주 엘리사벳 사이에서 13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태어났다.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때부터 깊은 신앙심을 가졌고, 여섯 살 때부터는 얀 들루고즈 신부에게 학문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는 부왕과 헝가리 귀족들로부터 헝가리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 축출 공작에 군대를 인솔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이 계획이 부당하다는 확신에 따라 거부하였다. 이 문제로 부왕의 노여움을 사 성에 연금된 그는 이를 기회로 삼아 기도와 수덕에 힘썼다. 그는 또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부왕의 제의를 단호히 거절하고 동정을 지켰으며, 부왕이 리투아니아에 가 있는 동안 부왕을 대리하여 폴란드를 통치하였는데, 가난한 자의 옹호자라고 불렸을 정도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보살폈다.

1484년 그가 대공 작위를 겸하고 있던 리투아니아를 여행하던 중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의 나이 26세였다. 유해는 빌나의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는 생존시부터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지만, 사후에는 한층 더 공경을 받았으며, 많은 기적도 일어났다.

전설에 의하면 1518년 폴란드 군대가 적군에 포위되어 패망의 위기에 있을 때 카시미로가 백마를 타고 나타나 순식간에 전세를 역전시켜 대승리로 이끌었고, 1604년 사후 120년 만에 그의 무덤을 열었을 때는 잠자는 듯 옛 모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으며, 손에 들고 있던 친필 성모 찬미가의 글씨도 선명하였다고 한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시성되고 폴란드 백성의 소망에 따라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주보가 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가시미로 [Casimirus]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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