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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네레오, 성 아킬레오,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 -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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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marancio, St Domitilla with Sts Nereus and Achilleus
c. 1598-99, Oil on canvas, 275 x 170 cm
Chiesa dei Santi Nereo e Achilleo, Rome

출처 : http://www.wga.hu/art/p/pomaranc/domitill.jpg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

성 네레오(또는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오(Achille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의 순교자로서 생몰 연대는 불분명하다.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는 원래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로마 황제의 친위대 소속 군인이었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가 4세기 말에 쓴 그들의 무덤 묘비에 따르면, 그들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손녀이며 그리스도교 신자였던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Flavia Domitilla)를 죽이라고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모범적 생활에 감동받아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자신들이 받은 명령을 거부하였다. 교황 성 다마수스 1세는 이를 ‘신앙의 기적’이라고 표현하였다.
결국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는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와 함께 로마(Roma)에서 폰자(Ponza)라는 섬으로 추방되었다. 이 세 사람은 트라야누스 황제가 통치하던 시기에 테라치나(Terracina)라는 섬으로 옮겨졌다. 성 예로니모(Hieronymus, 9월 30일)는 그들의 추방 자체가 하나의 긴 순교록이라고 하였다. 이 섬으로 유배된 후에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화형을, 그리고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있는 도미틸라의 묘에 안치되었다. 그들은 이미 초대 교회 때부터 공경되어 그 이름이 5세기 로마의 축일표에 기재되었고, 젤라시우스 전례서(Sacramentarium Gelasianum)에는 그들의 축일 미사 전례문이 수록되어 있다. 398년 교황 성 시리키오(Siricius, 11월 26일)는 그들을 기념하여 성녀 도미틸라의 묘에 성당을 세웠고, 이 성당에서 성 대 그레고리오 1세(Gregorius I, 9월 3일) 교황은 재임 중 그들을 기념하여 다음과 같은 강론을 하였다. “이 성인들은 세상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발아래 놓았습니다.” 800년에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 6월 12일)는 그들을 기념하여 새 성당을 지었으며, 이 성당은 16세기에 바로니우스(Baronius) 추기경에 의해 재건축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황제 티투스(Titus)와 도미티아누스(Domitianus)의 질녀이다. 성녀에 대해서는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첫째 이야기에 의하면, 그녀는 95년 로마(Roma) 집정관이었던 성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 6월 22일)의 부인이었다.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질녀인 성녀 도미틸라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알고 가예타(Gaeta) 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판다타리아(Pandataria) 섬으로 추방했다. 이교도 역사학자인 수에토니우스(Suetonius)와 디온 카시우스(Dion Cassius)는 성녀 도미틸라가 로마 제국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은 무신론자 또는 신성 모독자라는 죄명으로 고발당하여 순교했다고 전하고 있다.
둘째 이야기에 의하면, 역사가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성녀 도미틸라가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질녀라고 전한다. 평생 동정을 지키기를 원했으나 신자임이 발각되어 판다타리아 섬에서 북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폰티아(Pontia) 섬으로 추방되었다. 성녀 도미틸라를 죽이라고 파견된 로마 황제의 친위대 소속 군인 성 네레우스(Nereus)와 성 아킬레우스(Achilleus)는 오히려 그녀의 모범적 생활에 감동을 받아 자신들이 받은 명령을 거부하고 성녀 도미틸라와 함께 추방되었다. 이후 성녀 도미틸라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의 말처럼 순교와 마찬가지인 긴 유배 생활을 했으며 마침내 테라치나(Terracina)에서 성녀 도미틸라는 화형을,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는 참수형을 받고 함께 순교하였다. 이 때 그녀의 수양자매인 성녀 에우프로시나(Euphrosyna)와 성녀 테오도라(Theodora)도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성녀 도미틸라 그리고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의 유해는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있는 도미틸라의 묘에 안치되었고, 398년 성 시리키우스(Siricius, 11월 26일) 교황은 그들을 기념하여 그곳에 성당을 세웠다. 800년에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 6월 12일)는 새 성당을 지었고, 이 성당은 16세기에 바로니우스(Baronius) 추기경에 의해 재건되었다. 수많은 초기 순교자들처럼 도미틸라 성녀에 대해서도 정확한 사실들이 전해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긴 교회 전통 속에서 성녀 도미틸라는 황제의 질녀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명예와 부귀를 버리고 목숨으로 신앙을 지켰음을 전해 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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