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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아빌라의 성 요한 - 5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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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빌라의 성 요한_by Pierre Subleyras_in 1746.jpg

출처 : 가톨릭 굿뉴스

 

성 요한(Joannes)은 1499년 에스파냐 알모도바르 델 캄포(Almodovar del Campo)의 어느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14살 때에 법률 공부를 위하여 살라망카(Salamanca) 대학교에 들어갔다. 그러나 그는 법을 공부해 출세하기를 바라는 부모의 뜻과는 달리 공부 대신 수도 생활에 매력을 느껴 은수 생활을 위해 길을 떠났다. 그는 3년 동안 보속과 기도의 생활에 전념한 후 알칼라(Alcala)로 가서 도미니코회 수도승인 도미니코 데 소토(Dominicus de Soto)의 문하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중 양친이 모두 사망했고, 그는 1526년 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부모가 묻힌 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양친이 물려준 막대한 유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해외 선교에 대한 소명을 느낀 그는 멕시코로 갈 준비를 위해 세비야로 가서 기다리던 중 설교와 교리교육에서 탁월한 능력을 알아본 세비야의 대주교의 요청으로 안달루시아(Andalucia) 지방 선교를 위해 국내에 남게 되었다.
그 후 그는 뛰어난 설교가로 이름을 떨쳤고, 특히 이슬람교와 유대교에서 개종자가 많이 나오는 안달루시아 지방의 선교사로 활약하였다. 거룩하고 엄격한 삶을 바탕으로 한 그의 설교를 듣고 많은 사람이 회심하고 개종하였다. 그러나 모두가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거침없이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과 부자들의 잘못을 꼬집는 설교를 하다가 그들의 미움을 받아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식의 극단적인 설교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오래지 않아 석방되었고 설교가로서의 명성은 더욱 높아만 갔다. 그는 에스파냐 전역을 순회하며 설교를 계속하는 한편,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 12월 14일), 성 프란치스코 보르자(Franciscus Borgia, 10월 10일) 그리고 알칸타라(Alcantara)의 성 베드로(Petrus, 10월 19일)의 영적 지도자로서도 활약하였다. 사람들로부터 ‘안달루시아의 사도’로 불린 그는 1569년 5월 10일 에스파냐 코르도바(Cordoba) 지방의 몬티야(Montilla)에서 선종하였다. 그리고 그의 뜻대로 시신은 몬티야에 있는 강생의 예수회 성당에 묻혔고, 오늘날 아빌라의 성 요한 성지성당으로서 많은 순례자가 찾고 있다.
그는 1894년 4월 6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에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2012년 10월 7일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는 성 베드로 광장에서 제13차 세계 주교시노드 개막미사를 집전하면서 아빌라의 성 요한과 빙겐의 성녀 힐데가르트(Hildegardis, 9월 17일)를 교회학자로 선포하였다. 그리고 2021년 1월 25일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교령을 발표해 5월 10일을 아빌라의 성 요한의 기념일로 제정하며 전례력에 추가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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