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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이야기/전례력의 축일과 성인들

[천주교, 가톨릭 세례명 축일] 성 베네딕토 비스코프 -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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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섬브리아(Northumbria)의 국왕 오스위의 궁중 관리이자 귀족 출신인 성 베네딕토 비스코프(Benedictus Biscop, 또는 베네딕투스 비스코프)의 본래 이름은 비스코프 바두칭(Biscop Baducing)이었다. 그는 25세 되던 해에 궁중을 떠났다. 그는 653년에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성경 연구와 영적인 일에 헌신하려는 결심을 굳히게 되었다. 두 번째 로마 순례에서 돌아오던 어느 날 그는 프랑스의 레렝스(Lerins)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으며 2년을 그곳에서 지냈다. 세 번째로 로마를 순례했을 때 교황 성 비탈리아노(Vitalianus, 1월 27일)가 마침 캔터베리(Canterbury)의 신임 대주교로 선임된 성 테오도로(Theodorus, 9월 19일)를 수행토록 명하여 이를 성공리에 마쳤다.
성 테오도로는 그를 캔터베리의 성 베드로(Petrus)와 성 바오로(Paul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임명하였고, 2년 후에 그는 성인들의 유해, 종교 예술품, 회화, 원고 등을 수집하기 위하여 로마로 귀향하였다. 674년에 그는 위어(Wear) 강 입구에 수도원을 세워 성 베드로에게 봉헌하였다. 이 건물은 그 당시 영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공법으로 지었는데, 프랑스의 장인들이 지어 지금도 유명한 위어머스(Wearmouth)의 성 베드로 수도원이 되었다. 그리고 682년에는 타인(Tyne) 강에서 6마일 거리에 두 번째 수도원을 짓고 성 바오로에게 봉헌하니 이곳이 재로우(Jarrow)의 성 바오로 수도원이다.
그는 또 위의 두 수도원 수도자들에게 성무일도를 노래하고 그레고리안 성가를 익히도록 음악 전문가를 초빙하였다. 그의 지도하에 두 수도원은 학문과 로마 전례의 중심지로 변하게 되었다. 그는 생애의 마지막 3년을 중풍으로 침대 위에서 지내다가 1월 12일에 운명하였다. 그의 전기는 제자인 성 베다(Beda, 5월 25일)가 썼다. 그는 베네트 비스코프(Benet Biscop)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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